전쟁인데 금값이 떨어진다? (달러 강세, 금리 동결, 차익실현)
솔직히 저는 미국이 이란을 공습했다는 뉴스를 보고 당연히 금값이 오를 줄 알았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안전자산인 금으로 돈이 몰린다는 건 상식 아닙니까? 그래서 금 선물 ETF에 투자했는데, 오히려 금값이 3% 넘게 떨어지는 걸 보고 정말 당황했습니다. 은은 더 심해서 8%나 급락했고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전쟁 상황에서도 금값이 떨어질 수 있다니, 시장은 제 예상과는 정말 다르게 움직이더군요.

달러 강세가 금값을 누른 핵심 이유
전쟁이 터졌는데 왜 금이 안 올랐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달러 강세였습니다. 19일 시카고상품거래소 기준으로 현물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4,654.29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여기서 트로이온스란 귀금속 거래에 쓰이는 단위로 약 31.1그램을 의미합니다. 금은 달러로 거래되는 자산이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다른 나라 통화를 쓰는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금을 사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전쟁이 터지면 보통 글로벌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데, 지금은 금보다 달러가 더 강력한 초안전자산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투자할 때는 이 부분을 간과했더군요. 전쟁 리스크만 보고 달러 강세라는 변수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게 실수였습니다.
금리 동결도 한몫했습니다. 1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중앙은행이 모두 금리를 동결했는데요. 여기서 금리 동결이란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고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고금리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죠.
금은 이자가 없는 자산입니다. 국채나 예금 금리가 높으면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이자를 주는 쪽으로 돈을 옮기게 됩니다.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금 투자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빠르게 작동하더군요. 전쟁 뉴스가 나온 다음 날 바로 금값이 꺾이는 걸 보면서, 시장이 금리를 얼마나 민감하게 반영하는지 실감했습니다.
유동성 위기와 차익실현이 동시에 발생
그럼 왜 안전자산인 금마저 팔린 걸까요? 위기 초기에는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기업이나 기관들은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려 하고, 개인 투자자들도 손실 방어를 위해 일단 보유 자산을 팔아치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금이든 주식이든 가리지 않고 매도세가 나옵니다.
여기에 차익실현 수요도 겹쳤습니다. 지난해부터 금값이 상당히 많이 올랐거든요. 전쟁 전에 이미 금값이 고점 근처였기 때문에, 전쟁 뉴스가 나오자 "이제 팔 때다"라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장 관계자는 이를 '선반영 효과'라고 설명하는데요. 여기서 선반영이란 중요한 이벤트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이미 시장 가격에 그 영향이 반영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쟁 리스크가 커지면서 이미 금값이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 전쟁이 터지자 오히려 "뉴스로 팔아라(Sell on news)"는 격언대로 매도가 나온 거죠.
은 가격은 금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은 선물은 8% 넘게 급락해 71.25달러에 마감했는데, 이유가 뭘까요? 은은 금과 달리 산업재 성격이 강합니다. 전자기기, 태양광 패널 등 실물 경제에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유가가 오르고, 그러면 소비자와 기업의 지출이 위축되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월가는 보고 있습니다(출처: 골드만삭스).
구리 같은 산업용 금속도 2% 하락했는데, 이런 원자재 가격 하락은 경기 둔화 신호로 해석됩니다. 전쟁 초기에는 물가 상승 우려와 경기 침체 우려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장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걸 이번에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금 투자를 유지하는 이유
그럼 저는 금 투자를 정리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 회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손실이 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금값은 다시 오를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전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각국의 재정 적자와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군사비 지출이 대폭 확대되면 달러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골드만삭스 크리스티안 뮐러 자산 배분 리서치 책임자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이 지속되고 실질 금리가 하락하면 실물 자산 및 통화 분산 수요 증가로 금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여기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경기는 안 좋은데 물가는 계속 오르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변동성이 클 겁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런 혼란기에는 보험을 하나 든다는 생각으로 금을 보유하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수익이 안 나더라도 장기적으로 자산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금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시장을 보는 관점도 조정이 필요합니다. 전쟁만 보고 투자하면 위험합니다. 달러 인덱스(DXY), 미국 국채 금리, 유가 같은 지표를 종합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한 가지 변수만 보고 판단했다가는 저처럼 예상 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급하게 팔지 않고 기다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