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수주 호황 (가스운반선, FLNG, 수익성)

솔직히 저는 조선업을 오랫동안 '중국이 이미 따라잡은 산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량 싸움에서 밀리면 결국 지는 거라고요. 그런데 2025년 실적과 수주 흐름을 직접 들여다보니 제가 완전히 틀렸습니다. 한국 조선사들은 물량 경쟁에서 빠져나와 아예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스운반선 80% 독식, 숫자 뒤에 있는 진짜 의미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VLGC(초대형 가스운반선)와 VLAC(암모니아운반선)는 총 46척입니다. 이 중 37척을 한국 조선 빅3가 가져갔습니다. 점유율로 따지면 약 80%로, 조선업 세계 1위인 중국(8척)을 압도적으로 따돌린 수치입니다(출처: 클라크슨리서치).
여기서 VLGC란 액화석유가스(LPG)를 초저온 상태로 유지하면서 운반하는 대형 선박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크다는 것이 아니라, 고압·저온 환경을 장거리 항해 내내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와 제작 난도가 일반 상선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국이 물량으로 앞서는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입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단순히 "한국이 많이 수주했네" 하고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왜 지금 VLGC 발주가 이렇게 늘었냐는 겁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 이후 중동산 LPG 대신 미국산 LPG 수출이 급격히 늘었고, 미국에서 아시아까지 장거리를 오가는 항로가 많아지면서 선박 수요 자체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단기 이슈가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라는 흐름이 만들어낸 수요입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VLGC가 LPG 운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설계에 따라 암모니아 운송까지 가능하도록 발주할 수 있습니다. VLAC, 즉 암모니아운반선은 수소 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핵심 연료로 꼽히는 암모니아를 전용으로 운반하는 선박입니다. 탄소중립 정책이 가속화될수록 이 선종의 수요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수요는 단순한 업황 호조와 다르게 훨씬 오래 지속됩니다.
이 흐름 속에서 HD현대중공업은 이달에만 VLGC 10척을 1조7768억원 규모로 수주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선박 수주 점유율은 44%로, 중국(47%)과의 격차가 불과 3%포인트까지 좁혀졌습니다. 4월에 중국이 70%, 한국이 15%였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몇 달 만에 판이 완전히 뒤집힌 셈입니다.
한국 조선사들의 강점이 고부가 선박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수익성 숫자에서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 HD한국조선해양: 2025년 연간 영업이익 3조 9,045억 원, 영업이익률 약 13%
- 삼성중공업: 영업이익 8,622억 원, 영업이익률 약 8.1%
- 중국 CSSC(국영 최대 조선사): 영업이익 약 9,200억 원, 영업이익률 약 6.3%
HD한국조선해양 한 곳의 영업이익이 중국 최대 국영 조선그룹 CSSC와 민영 최강자 양쯔강조선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중국이 수주량으로는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돈을 실제로 더 많이 버는 쪽은 한국이라는 것을 수치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FLNG 수주가 의미하는 것, 조선업의 경계가 바뀌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이달 따낸 FLNG 2기 수주는 규모만으로도 7조9837억 원에 달합니다. FLNG란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를 말하는데,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직접 뽑아 정제하고 액화한 뒤 저장과 하역까지 한 번에 수행하는 복합 설비입니다. 육지에 있어야 할 가스전 개발 설비 전체를 바다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이 설비를 처음 이해했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선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하고, 플랜트라고 부르기에는 움직일 수 있는 구조물입니다. 이게 바로 기술 장벽이 극단적으로 높은 이유입니다.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주된 FLNG는 총 11기인데, 삼성중공업이 그중 7기를 수주했습니다. 글로벌 점유율이 63%를 넘습니다.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일반적으로 해양 플랜트는 경기 민감도가 높아서 발주 사이클이 불규칙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FLNG만큼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FLNG에서 생산된 LNG를 각국으로 운송하려면 추가적인 LNG 운반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FLNG 수주 증가는 LNG 운반선 발주 증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결 구조가 있습니다. 조선사 입장에서는 상류(설비)와 하류(운반선)를 동시에 수주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입니다.
하반기에는 삼성중공업이 미국 루이지애나주 델핀 프로젝트 FLNG 2호기와 캐나다 키시 리심스 프로젝트용 FLNG 수주에 추가로 도전합니다. 현재 수주 잔량 4기에서 6기로 늘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조선 빅3의 올해 상반기 합산 수주액은 이미 278억4000만 달러(약 42조 원)로, 지난해 상반기의 1.7배 수준입니다(출처: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그렇다고 지금의 흐름이 계속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선업은 구조적으로 경기 민감 산업입니다.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거나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 발주 자체가 급감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나올 때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K조선의 강점은 물량이 아니라 기술에 있습니다. 그 기술 격차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가 이 호황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입니다. 주가나 수주 뉴스만 보지 말고, 중국이 VLGC와 FLNG 영역에서 얼마나 빠르게 따라오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