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강남에서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급매로 내놓는 집주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서울 전역이 전세난으로 난리인데 강남만 예외라니요. 하지만 평당 4271만원이라는 전세가를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아무리 강남이라도 소득과 대출 규제 현실을 무시할 순 없었던 겁니다.
평당 4천만원 전세, 누가 들어갈까
강남구와 서초구의 평당 전세가격이 2월 기준 4271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평이란 3.3㎡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30평대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12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출처: KB부동산). 송파구도 3375만원으로 만만치 않고요.
제가 2018년 부천에서 어머니 전세집을 구할 때 겪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15평짜리 아파트가 1억 2천에 나왔는데, 재건축 이슈로 순식간에 매도됐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했던 건 그 집을 산 사람이 1억 2천 5백에 전세를 내놨다는 겁니다. 매수가보다 높은 전세가요. 당시엔 이게 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강남 대치동의 한 중개사는 "금액은 내려가지 않지만 전세 손님도 제한적이고 거래가 작년보다 지연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10억원대 전세 매물을 본 신혼부부에게 집주인이 먼저 가격 조정을 제안하며 계약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정부의 전세대출 규제 강화가 직격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6·27과 10·15 부동산 대책으로 1주택자 전세대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되기 시작했는데요. DSR이란 연소득 대비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모든 대출 상환액 비율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전세대출을 받으면 다른 대출 여력이 크게 줄어든다는 겁니다.
서울 무주택 실수요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4226만원, 평균 자산은 1억 8379만원입니다(출처: 서울시). 이들이 10억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대출을 최대한 받아도 턱없이 부족하고, DSR 규제로 대출 한도는 더 줄었습니다.
갭투자 시대의 종말
제가 2018년 부천에서 목격한 '역전세'는 전형적인 갭투자였습니다. 매수가와 전세가의 차이, 즉 갭(gap)이 거의 없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투자 방식이죠. 당시엔 이게 정상적인 투자 전략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강남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반대입니다.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전용 84㎡는 최근 매매가가 4억원 이상 하락했지만, 전세 매물은 여전히 17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는 올해 1월 같은 타입이 13억원에 매매됐는데, 전세 호가는 20억원입니다. 전세가율이 150%를 넘는 겁니다.
전세가율이란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70~80%가 적정 수준인데, 100%를 넘으면 전세가 매매가보다 높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구조에선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으로 집값을 다 충당하고도 남는데, 문제는 이걸 받아줄 세입자가 없다는 겁니다.
올해 1월부터 2월 26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중 갱신계약 비중이 47.7%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5.1%에서 12.6%포인트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전세 물건이 나와도 기존 세입자들이 갱신을 선택하면서 신규 수요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겁니다. 실거주 의무 강화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로 매물은 늘어나는데, 이를 받아줄 수요는 사라진 상황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오래 못 갑니다. 부천에서 봤던 역전세 아파트도 결국 2~3년 후엔 정상화됐거든요. 가격과 수요의 불균형은 결국 가격 조정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월세 시대로의 전환
강남 전세시장의 혼란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신호로 보입니다. 전세 중심 임대 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이라는 겁니다.
집주인 입장에선 고액의 전세 보증금을 받아도 금리가 높아지면서 운용 수익률이 떨어졌습니다. 오히려 월세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게 유리해진 겁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10억원이 넘는 보증금 부담보다는 초기 비용을 줄이고 월세로 내는 게 현실적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시장 붕괴가 아니라 정상화 과정이라고 봅니다. 소득과 동떨어진 전세가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거든요. 서울 무주택 가구가 연 4천만원 소득으로 10억원 이상 전세를 얻는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습니다.
물론 리스크는 있습니다. 입주 물량이 집중되거나 금리가 재상승하면 전세 시장은 더 위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세가율이 정상 범위로 돌아가고, 월세 비중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안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샘통이 난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저는 지금의 변화가 건강하다고 봅니다. 갭투자로 돈 버는 시대가 끝나가는 거니까요. 강남 전세시장의 혼란은 가격이 현실과 만나는 과정입니다. 집을 구하는 사람도, 임대를 놓는 사람도 이제 숫자를 냉정하게 봐야 할 때입니다. 전세가율과 DSR, 자기자본 비중을 꼼꼼히 따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