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돈을 많이 벌수록 나라 경제가 좋아진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정책실장이 SNS에 올린 글 하나가 코스피를 하루 만에 5% 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사건은 단순한 정책 논쟁이 아니라, AI 시대가 만들어낼 부의 집중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횡재세 신호 하나에 코스피가 무너진 이유

지난 5월 12일 아침, 시장이 열리자마자 포트폴리오 알림이 연달아 울렸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시에 급락하는 걸 보면서 처음엔 미국발 악재가 터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날 밤 SNS에 올린 글,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 시장을 뒤흔든 것이었습니다.
핵심은 횡재세(windfall tax)였습니다. 횡재세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이 일반적인 수준을 크게 초과하는 이익을 올렸을 때, 그 초과분에 대해 별도로 부과하는 세금을 의미합니다. 유럽연합이 에너지 위기 시절 정유사에 적용한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증권업계는 김 실장이 '초과 이윤', '초과 이익'이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한 것을 보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기업이 직접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읽었습니다. 시장이 즉각 반응한 것은 바로 그 '신호'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책 논문도 아니고, 개인 SNS 글 하나가 블룸버그 주요 뉴스에 올라가고 코스피 수천 조 시가총액을 하루 만에 날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배운 건, 시장은 정책 자체가 아니라 정책 리스크 프리미엄에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정책 리스크 프리미엄이란 특정 국가나 시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추가적인 수익률을 뜻합니다. 실제로 시행될지 여부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청와대 핵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충분히 리스크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김 실장은 이후 "기업 이익이 아니라 초과 세수를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명했고, 청와대도 "개인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흔들린 시장 신뢰는 그렇게 쉽게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배당금 구상, 왜 틀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른가

그렇다고 김 실장의 문제의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제가 알래스카 사례를 처음 공부했을 때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Permanent Fund Dividend)은 석유 수익을 별도 펀드에 적립하고 매년 주민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자원에서 발생한 초과 이익을 전 주민이 나누는 모델로, 자원 기반 국민배당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힙니다(출처: 알래스카 영구기금공사).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석유 수익을 전 세계 자산에 분산 투자해 미래 세대까지 혜택을 나누는 구조로,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자원 수익의 세대 간 이전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습니다(출처: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운용). 김 실장도 이 모델을 언급하며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을 같은 방식으로 설계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문제는 석유와 AI 반도체 수익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석유는 명확히 국가 소유 자원입니다. 반면 반도체 초과 이익은 민간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를 쌓아올린 결과입니다. '초과 이윤'의 기준도 모호합니다.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얼마를 넘으면 초과인지, 어느 사이클이 구조적 변화인지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 지금 당장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ROE란 기업이 주주의 돈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창출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분배 정책의 기준선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충돌하는 숫자입니다.
제가 보기에 국민배당금 논의가 실패하는 이유는 분배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책화할 수 있는 기준과 신뢰가 먼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가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논의가 진지하게 설계되려면 최소한 다음 사항들이 먼저 정리되어야 합니다.
- 초과 이윤의 법적 정의와 산정 기준
- 재원을 세수 기반으로 할 것인지 기업 이익 직접 환수로 할 것인지 명확한 구분
- 외국인 투자자와 글로벌 기업에 미칠 영향 분석
- 분배 방식과 대상의 구체적 설계(청년 창업, 농어촌 기본소득, 전환 교육 등)
중국의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직접 겪어본 투자자라면 압니다. 분배 의지가 좋아 보여도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강한 신호가 먼저 나오면, 기업 투자는 위축되고 외국 자본은 이탈합니다. 성장이 먼저 무너지면 나눌 파이 자체가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남긴 것은 두 가지입니다. AI 시대 부의 집중 문제는 언젠가 반드시 다뤄야 할 의제라는 것, 그리고 그 논의는 정교한 설계와 시장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꺼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당분간 한국 시장을 볼 때는 정책 불확실성을 하나의 변수로 더 얹어서 판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투자 결정은 언제나 개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이 글은 특정 투자 방향을 권유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분석과 경험 공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