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업계가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미약품의 에페글레나타이드를 필두로 HK이노엔, 일동제약, 유한양행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신약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향후 10년 이상 구조적 성장이 거의 확정된 메가마켓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필수 선택입니다.
◎ 에페글레나타이드, 국산 비만약의 첫 테이프를 끊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주 1회 투여 GLP-1 계열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개발명 HM11260C)가 오는 4분기 국내 최초로 출시됩니다.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시판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이 약은 지난해 10월 임상 3상 시험에서 40주 차 평균 9.75%, 최대 30%의 체중 감량률을 확인하며 시장성을 입증했습니다. 당초 64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던 임상시험을 조기 종료하고 허가 신청을 앞당긴 것은 중간 데이터가 양호했을 뿐 아니라, 국산 GLP-1 출시 속도를 높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한미약품은 전날 식약처로부터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당뇨약으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 3상 시험도 승인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이 약은 올해 4분기 비만약으로, 2028년에는 당뇨약으로 출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경기 평택 공장에서 생산하면 기존 수입 약보다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를 비롯한 선두 기업들이 비싼 가격으로 시장을 독점하면서, 약을 꼭 써야 할 당뇨 환자들이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내 한 대학 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수입 약은 공급 중단이 흔해 당뇨 환자에게 GLP-1 치료제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산화가 이루어지면 가격 인하와 함께 공급 안정성도 확보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단순 체중 감량제가 아니라 대사질환 플랫폼 약물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준으로 현재 수십 조 원 규모인 이 시장은 2035년 전후 100조 원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낙관적 가정이 아니라 환자 수 증가, 치료 지속성, 보험·의료 체계 편입이 이미 동시에 진행 중이기 때문에 확정적입니다.
◎ GLP-1 시장 경쟁, 후발 주자들의 빠른 추격
HK이노엔은 지난 20일 주 1회 투여 GLP-1 계열 비만약 에크노글루타이드(개발명 IN-B00009)의 국내 임상 3상 환자 모집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난해 9월 첫 환자를 등록한 뒤 4개월 만에 임상 대상자 313명이 모두 채워진 것은 비만 치료제에 대한 높은 관심과 수요를 반영합니다. HK이노엔은 2024년 중국 사이윈드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이 약의 국내 개발권을 확보한 후 비만·당뇨약으로 개발 중이며, 업계는 이르면 내년께 허가를 신청한 뒤 2028년 말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GLP-1 경쟁은 이미 '게임 오버'가 아닙니다. 현재 시장을 장악한 약물들은 주사제 중심이며, 부작용 이슈, 장기 복용 부담, 가격 문제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경구용, 부작용 개선형, 복합 대사질환 동시 개선, 차세대 기전으로 갈 공간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간이 바로 국내 신약 업체들이 노리는 영역입니다.
비만은 이제 개인 관리 문제가 아니라 인구 구조 문제입니다. 전 세계 성인 8~9명 중 1명이 비만이며, 당뇨·고혈압·심혈관질환의 핵심 원인이자 국가 의료비 부담의 주범입니다. 각국 정부 입장에서 비만약은 비용이 아니라 의료비 절감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만성질환 치료제이자 장기 투약 시장이라는 특성이 확정됩니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GLP-1 계열 비만약으로 기업 가치 자체가 재평가되었으며, 이는 비만약 하나 성공하면 회사 체급이 달라진다는 확실한 전례를 시장에 남겼습니다.
국내 제약사들에게도 유리한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글로벌 임상 경험 축적, 빠른 후보물질 탐색, 기술이전(L/O) 중심 전략이 가능하며, 단일 블록버스터가 아닌 플랫폼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1등 약을 직접 팔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중간 단계에서 기술 가치로 승부하는 구조에서는 성공 확률 대비 투자 대비 수익률(ROI)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 기술 차별화로 시장 판도를 바꾸다
한미약품은 기존 GLP-1과 다른 단백질(UCN2)을 표적으로 삼은 비만 신약 HM17321을 개발 중입니다. 근육량을 늘리고 지방만 빼주는 이 신약은 물질 발굴 단계부터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이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말 유인원 대상 동물실험에서 유효성을 확인했고 올해 초 임상 환자 투여를 시작했습니다. 최인영 한미약품 R&D센터장(전무)은 "세계 비만 치료제 개발 트렌드가 체중 감량의 질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에 맞춰 올해 HM17321 뒤를 이을 근육 증가 관련 후속 신규 후보물질도 데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동제약은 합성화합물을 활용한 먹는 약으로 기술수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몸속 효소에 의해 바로 분해되는 펩타이드 계열 먹는 약보다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은 줄인 것이 특징입니다. 유한양행도 올해 월 1회 투여 주사제 임상시험에 진입합니다. 셀트리온은 내년 비만 관련 네 가지 단백질에 작용하는 4중제 신약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국내 제약사들은 단순히 기존 약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기술로 수입약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봐야 할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임상 실패 확률은 여전히 높으며, 후발주자로서 차별화에 실패할 경우 가치가 급락할 수 있습니다. 경쟁 심화로 기술이전 조건이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비만약은 모든 회사가 성공하는 시장은 아니지만, 성공 시 보상은 제약업 역사상 최상급입니다. 시장은 이미 성장 가능성이 아니라 성장 경로가 확인된 상태이며, 국내 신약 업체의 진입은 모험이 아니라 전략적 필수 선택에 가깝습니다. 확정적 장기 성장, 만성질환 플랫폼 구조, 차세대 기전·경구화 기회, 임상 실패 리스크, 그리고 회사 가치 재평가라는 보상이 공존하는 시장입니다.
국산 비만약 시대의 개막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의 출시를 넘어,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시작으로 다양한 국산 신약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가격 인하와 공급 안정성 확보를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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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경제 기사: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12270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