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복도 외국산 원사로 만든다는 걸 아시나요? 저도 처음엔 '설마 군대 옷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군 피복류에 들어가는 원사의 70~80%가 중국·인도네시아산이라는 걸 알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국방부 예산으로 만드는 전투복인데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외국산 실로 짜여 있다는 게 묘하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태광산업, 효성티앤씨 같은 국내 섬유업체들이 이 원사를 전면 국산화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안을 낸다고 합니다. 연간 200톤 규모의 섬유 수요가 새로 생긴다는 얘기인데,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섬유업계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왜 지금 원사 국산화를 말하는가
현행 방위사업법은 '국내에서 생산된 군수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국내 생산'이란 수입 원사를 써도 국내에서 염색·가공·봉제만 하면 국내산으로 인정받는 구조입니다(출처: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쉽게 말해 중국산 실로 짠 천을 국내 공장에서 군복으로 만들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는 겁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저렴한 외국산 원사를 쓰는 봉제업체가 공공입찰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유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이번에 방상내피, 방상외피, 궤도차량승무원복, 컴뱃셔츠 등 군 피복류 4종에 들어가는 원사의 국산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방위사업법 개정 건의안을 상반기 중 국회와 국방부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저도 의류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느끼는 건데, 인건비 상승과 숙련 인력 부족으로 생산 분야는 이미 중국·동남아에 주도권을 내줬습니다. 실제로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려면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군복마저 외국 원료에 의존하게 되면 국내 업체가 연명할 길이 거의 없어집니다.
국방부는 2021년부터 국산섬유인증제도를 시행해 국산 원사 사용 업체에 가산점을 주고 있지만, 실제 적용 대상은 전투복뿐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올해 국방부 전투복 예산은 362억 원으로 전체 국방 피복 예산 5,854억 원의 약 6.2%에 불과합니다(출처: 국방부). 제가 보기엔 제도는 있는데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업계에서는 건의안이 반영되면 다음과 같은 국산 섬유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합니다.
- 나일론 70톤: 내구성이 높아 전술조끼 등에 사용
- 폴리에스테르 125톤: 방상외피 등 의류 전반에 사용
- 폴리우레탄 5톤: 스판덱스 섬유 가공 원료
여기서 나일론이란 고강도·고내구성을 가진 합성섬유로, 군용 장비처럼 극한 환경에서 견뎌야 하는 제품에 필수적인 소재입니다. 폴리에스테르는 가볍고 내구성이 좋아 일반 의류부터 산업용 원단까지 폭넓게 쓰이는 범용 섬유입니다. 폴리우레탄은 신축성을 부여하는 탄성 고분자로, 스판덱스(일명 라이크라) 섬유를 만드는 핵심 원료입니다.
의류업계와 군수업체, 누가 살고 누가 죽나
국내 나일론 생산업체는 태광산업 단 한 곳뿐입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때문에 코오롱, KP케미칼(현 롯데케미칼) 같은 대기업들도 국내 나일론 사업을 접었습니다. 태광산업의 나일론 공장 가동률은 45%대로 떨어진 상태라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번 국산화 건의가 섬유업계 입장에선 마지막 구명줄처럼 느껴집니다. 스판덱스용 폴리우레탄 생산 기업도 효성티앤씨 한 곳뿐이고, 폴리에스테르는 대한화섬·효성티앤씨·휴비스·도레이첨단소재 등 네 곳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산화가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방 예산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저렴한 외국산 원사 대신 국산 원사를 쓰면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고, 그럼 공공입찰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단순히 가격만 따지면 결국 모든 생산 기반을 잃게 됩니다. 이미 의류업계는 인건비 싸다고 중국·동남아로 다 넘어갔고, 지금은 일할 사람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군수업체 입장에서는 이번 국산화가 통합 패키지 수주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무기·장구류·피복을 묶어서 공급하는 '완성형 군수 패키지'가 가능해지면 방산 수출 경쟁력도 높아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은 국가 안보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군 피복류와 장구류 전반에 '메이드 인 USA'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면 연간 6,000억 원 규모의 국방 섬유 시장을 넘어 경찰복·소방복 같은 단체복 시장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다만 우려도 있습니다. 방산 예산은 정부 정책에 따라 변동성이 크고, 단일 발주처(국방부)에 의존하게 되면 민간 시장 다각화가 어렵습니다. 또 군수품 특성상 기술 보안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산화가 단순히 원사만 바꾸는 게 아니라 기능성 소재 개발로 이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방염·방탄·방수 같은 첨단 기능성 소재는 기술 집약 산업이고, 이런 쪽으로 전환하면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향후 전술조끼, 침낭, 개인천막 등으로 건의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만약 이게 실현되면 나일론 같은 고내구 섬유 수요가 더 늘어날 겁니다. 제가 보기엔 이번 건의안이 통과되느냐 마느냐가 국내 섬유산업의 향후 10년을 좌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군복 국산화는 단순히 '외국산 실 대신 국산 실 쓰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섬유업계에는 사양산업에서 벗어날 기회이고, 군수업체에는 통합 수주 확대 기회입니다.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공급망 자립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가격만 보고 외국산을 쓰다가 생산 기반을 전부 잃는 것보다, 조금 비싸도 국산을 키워서 기술력을 쌓는 게 장기적으로 낫다고 봅니다. 다만 국산화가 단순 원가 상승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기능성 소재 개발 같은 고부가가치 전환이 반드시 동반돼야 할 겁니다.
참고: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3064150i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30644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