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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그랜버드 철수 (버스시장, 중국전기버스, 고용갈등)

by young10862 2026. 6. 18.

기아 그랜버드 철수 관련 이미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그랜버드를 마지막으로 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KTX를 먼저 검색하게 됐고, 버스는 선택지 아래로 밀려났습니다. 기아도 아마 비슷한 계산을 했을 겁니다. 60년 가까이 이어온 버스 사업에서 결국 손을 뗀다는 소식, 단순한 철수가 아니라 한 시대의 마무리처럼 느껴졌습니다.


60년 버스 명가, 왜 지금 끝나는가

기아의 버스 역사는 사실 기아 자체의 역사보다 깁니다. 기아의 전신 계열사인 아시아자동차가 1965년 설립된 이후 1970~1980년대 국내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시장을 사실상 주도했습니다. 기아는 1994년 디젤 기반 대형 버스인 그랜버드를 출시하며 그 명맥을 이어받았고, 이후 30년 넘게 광주공장에서 단일 차종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자료를 살펴보면서 든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하필 지금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버스 시장 자체의 구조가 이미 오래전부터 기울어져 있었는데, 마지막 버팀목들마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단체 관광은 줄었고 기업 통근버스도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고속철도인 KTX와 SRT가 장거리 이동 시장을 장악하면서 고속버스의 존재 이유가 희미해졌습니다. 그랜버드의 연간 판매량은 수년째 1,300~1,400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이 숫자는 대형 완성차 업체가 독자적인 사업 라인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규모였습니다.


중국 전기버스의 진격, 어디까지 왔나

솔직히 이 부분은 저도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걸 데이터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BYD, 하이거, CHTC 같은 중국 업체들이 국내 친환경 중대형 버스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50%를 넘었다가 정부의 전기버스 보조금 개편 이후 조정된 수치입니다.

여기서 전기버스 보조금 개편이란,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한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 산업 보호를 위해 도입한 조치인데, 이 덕분에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일부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점유율 30%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출처: 국토교통부).

더 큰 문제는 중국 업체들이 시내버스 위주에서 고속·관광형 전기버스로 제품군을 넓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기아 그랜버드와 타깃 시장이 달라서 직접 충돌이 적었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격 차이도 상당합니다. 그랜버드의 대당 가격이 약 2억 원 수준인데, 중국 업체들은 여기서 수천만 원에서 최대 1억 원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기아 입장에서 이와 경쟁하려면 전동화 전환과 동시에 가격 인하까지 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이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조건에 가깝습니다.


투자 효율성과 배출가스 규제, 냉정한 숫자의 벽

제가 이 사안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이 바로 투자 효율성 문제입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숫자만 보면 답은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배출가스 규제 강화가 핵심 변수입니다. 유로7(Euro 7)이란 유럽연합이 도입한 새로운 내연기관 차량 배출가스 기준을 말합니다.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 배출 허용치를 기존 유로 6 대비 대폭 낮춘 기준으로, 대형 디젤 버스는 이 기준에 가장 취약한 차종입니다. 엔진 튜닝 수준이 아니라 배기가스 후처리 장치와 EGR, 즉 배출가스 재순환장치를 새로 개발해야 합니다. EGR이란 연소 후 발생하는 배기가스 일부를 다시 엔진으로 끌어들여 연소 온도를 낮추고 질소산화물 발생을 줄이는 장치입니다.

이 장치들을 신규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천억 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연간 1,400대를 팔아서 이 투자를 회수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계산해보니 현실적으로 손익분기점 자체를 맞추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도 "연 1,400대 판매량을 보고 수천억 원을 새로 투자하는 일은 쉽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기아가 선택한 방향은 명확합니다. 디젤 버스에 자원을 쏟는 대신, PBV(Purpose Built Vehicle) 라인업 확대에 집중하겠다는 겁니다. PBV란 물류, 배송, 셔틀 등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전기차 기반 차량을 의미합니다. PV5를 시작으로 PV7, PV9까지 이어지는 라인업이 그랜버드의 B2B 시장 역할을 점진적으로 대체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 차원의 대형 버스 사업은 전기버스와 수소버스 라인업을 갖춘 현대차로 통합될 예정입니다(출처: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노조 반발, 그 요구가 말하는 것

기아 노동조합이 즉각 총력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노사 협의와 특근 협의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했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는 고용 안정 대책과 미래 투자 계획을 요구하는 긴급 성명을 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국면에서 노조 반발을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로 보는 건 핵심을 놓치는 해석입니다. 노조의 요구를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 고용 안정: 그랜버드 생산직 근로자들의 일자리 보장
  • 전환 배치 계획: 새로운 사업 부문으로의 구체적인 이동 경로 제시
  • 투자 계획 공개: 광주공장의 미래 역할에 대한 명확한 비전 제시

이 요구들은 사실 "사업 중단을 막겠다"기보다 "사업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비용을 짊어지면 안 된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산업 전환이 일어날 때 그 비용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인 겁니다.

전국에 등록된 전세버스 4만 1천 대 중 기아의 점유율은 약 30%입니다. 단일 차종인 그랜버드가 이 자리를 지켜온 건데, 그 뒤에는 광주공장 노동자들의 30년이 있습니다. 기아가 PBV와 전기차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선언하고 있는 만큼, 기존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내놓는 것이 협상의 핵심이 될 겁니다.

사업 철수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봅니다. 시장의 방향은 협상 테이블에서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철수의 방식과 속도, 그리고 전환 비용의 분담 방식은 충분히 협상 가능한 영역입니다. 이번 갈등이 어떤 합의점을 찾느냐에 따라, 기아가 앞으로 추진할 전동화 사업의 노사 관계 분위기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지금의 협상은 그랜버드 한 차종의 문제가 아닌, 기아 광주공장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국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617252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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