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쇼트의 주인공이 한국 증시에 대해 경고를 보냈다는데, 정말 2008년 같은 폭락이 올까요? 솔직히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마이클 버리가 서브스택을 통해 코스피의 급등락을 두고 "묵시록의 네 기사 중 하나가 나타났다"고 표현했다는 기사가 나온 뒤, SNS에서는 '버리가 한국 증시 붕괴를 예언했다'는 식의 해석이 퍼졌습니다. 여기서 묵시록의 네 기사란 성경에 나오는 종말의 징후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쉽게 말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질 조짐'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정작 버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태를 예견한 건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 빅쇼트를 재미있게 봤던 사람으로서, 이번 발언이 과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처럼 정확한 분석에 기반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멘텀 트레이딩과 기관투자자의 단타 매매
버리가 지적한 핵심은 코스피 시장에 모멘텀 트레이더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모멘텀 트레이딩이란 주가의 상승 또는 하락 추세를 따라가며 단기적으로 이익을 노리는 투자 기법을 말합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쉽게 말해 오르면 사고 떨어지면 파는, 추세를 쫓는 투기적 거래 방식이죠. 버리는 최근 한 달간 코스피를 움직인 주체가 기관투자자들이었고, 그 변동성 자체가 모멘텀 트레이더들의 진입 신호라고 분석했습니다.
저도 최근 몇 주간 코스피 차트를 보면서 하루에 2~3%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국과 이란의 전쟁 위기설이 불거진 후 외국인 매매량이 급증하면서 시장이 요동쳤는데, 이게 단순한 위험 회피가 아니라 데이트레이딩 성격이 강했다는 버리의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코스피 선물을 활용해 당일 매매를 반복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증권가 분석도 있었습니다(출처: 금융투자협회).
그런데 여기서 제가 의문을 가진 부분은, 과연 버리가 한국 증시의 구조와 정부 정책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봤느냐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외국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언급할 때, 피상적인 수치나 단기 차트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버리는 2008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인물이지만, 당시 그는 미국 주택 시장의 구조적 문제, 파생상품의 복잡한 연결고리, 은행들의 레버리지 비율까지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그는 수개월간 모기지 론 서류를 직접 뒤져가며 부실 대출의 실체를 파악했죠. 하지만 이번 코스피 발언은 서브스택에 짧게 올린 글일 뿐, 그런 수준의 분석이 뒷받침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코스피가 최근 급등한 건 사실이지만, 이는 저평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 증시는 수년간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Valuation Discount), 즉 실적 대비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란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기업 이익 증가 전망이 나오면서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된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단순히 '변동성이 크다 = 위험하다'로 단정하기엔 맥락이 부족합니다.
버리의 경고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
그렇다면 버리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이걸 '폭락 예언'보다는 '과열 경계 신호'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는 최근까지 인공지능 산업의 거품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고, 지금도 AI 관련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스피 언급도 비슷한 맥락으로, '시장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조정이 올 수 있다'는 일반론에 가깝습니다.
제가 보기에 버리가 우려하는 지점은 이렇습니다. 첫째, 단기 자금의 유입이 펀더멘털(기업의 실적과 가치)보다 심리와 모멘텀에 의존한다는 점. 둘째, 이런 자금은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 셋째, 변동성이 커지면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타당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지금 상황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위기는 부실 대출이 CDO(부채담보부증권)라는 파생상품으로 포장되어 전 세계 금융기관에 퍼져 있었고, 레버리지가 극단적으로 높았으며, 규제가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레버리지란 자기자본 대비 빌린 돈의 비율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빚을 얼마나 많이 내서 투자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반면 지금 한국 증시는 그런 구조적 위험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가 이어지거나, 금리와 환율 변수가 악화되면 조정이 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미국 금리 인하 속도가 늦춰지면 신흥국 자산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하지만 이건 '조정 가능성'이지 '붕괴 징후'는 아닙니다.
결국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버리의 발언은 경청할 가치가 있지만, 걸러 들어야 합니다. 그는 분명 뛰어난 투자자지만, 한국 증시를 수년간 추적해온 전문가는 아닙니다. 제 경험상 외국인 전문가들의 한국 경제 발언 중 상당수는 뉴스 헤드라인 수준의 피상적 분석이었습니다. 물론 시장 과열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 자체는 옳습니다. 하지만 그걸 '종말의 징후'처럼 받아들이는 건 과도한 해석입니다.
지금 투자자들이 확인해야 할 건 다음 세 가지입니다.
- 기업 실적(EPS)이 실제로 개선되고 있는가
-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변화가 일시적인가 구조적인가
- 금리와 환율 리스크가 어느 정도로 관리 가능한가
이 세 가지를 냉정하게 점검하면서, 버리의 경고는 참고 정도로 삼는 게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늘 불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종말론'에 휘둘릴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