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주변 제조업체 대표님들 만나면 다들 고민이 비슷합니다. 기존 사업만으론 버티기 힘들다는 거죠. 저도 니트 제조업을 하면서 주문 수량이 줄어드는 걸 체감하고 있는데, 최근 문구업체 모닝글로리가 가구 시장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꽤 놀랐습니다. 문구랑 가구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요즘 기업들이 살아남으려고 기존 사업 영역을 과감하게 넘어서는 '빅블러(Big Blur)' 전략을 쓰고 있더라고요. 침대업체가 향수를 팔고, 가구업체가 옷을 파는 시대입니다.
불황에 빠진 기업들이 선택한 생존 전략
모닝글로리는 2024년 적자를 기록하면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문구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이었죠. 이때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 화장지 사업 진출이었습니다. 문구와 화장지는 언뜻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두 제품 모두 펄프를 원재료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펄프(Pulp)란 나무를 화학적 또는 기계적으로 처리해 얻은 섬유질 재료로, 종이와 화장지의 핵심 원료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화장지 매출이 필통 매출만큼 나오자 모닝글로리는 이번엔 사무용 의자 시장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활용해 재고 부담을 줄이면서 신규 시장을 테스트하는 전략이죠. OEM이란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의 약자로, 제조 전문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방식을 말합니다(출처: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침대업체 시몬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몬스는 최근 '몽클로스'라는 브랜드로 디퓨저와 룸스프레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매장에 좋은 향을 퍼뜨리려고 전시만 했는데, 고객들이 구매 문의를 하면서 본격 사업화했다고 합니다. 전국 140여 개 오프라인 매장이 새로운 제품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 셈이죠. 여기서 테스트베드(Test Bed)란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실제 시장에 내놓기 전에 소규모로 시험해보는 환경이나 공간을 의미합니다. 시몬스에 따르면 디퓨저 사업 월매출이 초기 대비 8배나 증가했습니다.
기존 플랫폼 활용한 사업 확장의 실제
제가 보기에 이런 신사업 확장이 성공하는 핵심은 기존에 갖고 있던 '플랫폼'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입니다. 가구 브랜드 '까사미아'를 운영하는 신세계까사가 여성복 브랜드 '자아'를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가구 매장을 찾는 고객층이 주로 30~40대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신세계그룹의 유통망을 활용해 여성복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아성다이소는 플랫폼 활용의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전국 1,600개 매장이라는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초저가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2024년 화장품 매출 증가율이 144%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경제신문). '가성비 제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와 방대한 유통망이 시너지를 낸 결과죠.
저희 니트 제조업 입장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쁘지 않습니다. 기존에 의류를 만들지 않던 기업들이 패션 시장에 진출하면서, 저희 같은 중소 제조업체에 주문이 들어올 가능성이 생기거든요. 실제로 코닥이나 디스커버리처럼 해외 브랜드 이름만 가져와서 한국에서 의류 브랜드로 론칭하는 경우를 보면, 의류가 신사업 확장 소재로 꽤 매력적인 분야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제조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일수록 OEM 방식이 자주 활용됩니다. 직접 공장을 짓고 생산 라인을 구축하려면 초기 투자 비용이 어마어마하니까요. 대신 검증된 제조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브랜드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전략이죠. 신사업 초기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신사업 확장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체크포인트
솔직히 신사업이 다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노민선 실장도 "사전 시장 분석 없이 인기 산업군에 뛰어드는 게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제 경험상 주변에서 무작정 유행 따라 새 사업 시작했다가 손해만 보고 접은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신사업 진출 전에 반드시 체크해야 할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 브랜드 이미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
- 보유한 유통망이나 고객 기반을 활용할 수 있는가
- 초기 투자 비용과 재고 부담을 최소화할 방법이 있는가
- 시장 진입 시 차별화 포인트가 명확한가
모닝글로리 관계자 말처럼 OEM 제조와 온라인 판매를 통해 재고와 유통비용 부담을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대규모 투자보다는 소규모 테스트베드로 시장 반응을 확인한 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게 안전하죠.
정수기 렌털업체인 코웨이와 SK인텔릭스가 로봇 시장에 진출한 것처럼,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을 노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안마의자 업체 바디프랜드는 하드웨어 판매에서 구독 서비스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면서 수익 구조를 다각화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거죠.
개인적으로 저도 요즘 니트 제조만으론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문 수량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기존 고객사들이 어떤 신제품을 기획하는지, 어떤 시장으로 확장하려는지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다소 희망 섞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모두 어려운 시기인 만큼 서로 협력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불황을 타개하려면 기존 틀에 갇히지 말고 과감하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합니다. 다만 무작정 뛰어들기보단 철저한 시장 분석과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죠. 브랜드 이미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기존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 그게 신사업 성공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