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867점. 7조 8,000억 원짜리 사업의 승부를 가른 숫자가 고작 이것입니다. 방위사업청이 KDDX(한국형 차세대 구축함)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는 솔직히 "결국 그 사건이 발목을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40년 라이벌의 역사, 그리고 한 번의 실수
대한민국 해군 함정 수주전의 역사는 사실상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회사의 40년 라이벌 매치입니다. 제가 이 분야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방산 산업 구조를 공부하면서였는데, 두 회사의 수주 히스토리를 정리하다 보니 그 자체가 한국 조선 방산의 기술 자립 역사와 정확히 겹친다는 걸 느꼈습니다.
1990년대 KDX-I(광개토대왕급) 구축함부터 2000년대 KDX-III(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까지, 두 회사는 번갈아가며 수주를 나눠 가졌습니다. 여기서 KDX-III란 이지스(AEGIS) 전투체계를 탑재한 7,600톤급 대형 구축함으로, 한국 해군이 대양 작전 능력을 갖추기 위해 도입한 핵심 전력입니다. 세종대왕함은 현대중공업이, 율곡이이함은 대우조선해양이, 서애류성룡함은 다시 현대중공업이 가져가는 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방산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물량을 균형 있게 배분하는 흐름이 강했습니다.
흐름이 바뀐 건 2018년 전후였습니다. KDDX 기본설계 사업을 따낸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의 개념설계 자료를 무단 촬영·유출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8명은 2022년 11월, 나머지 1명은 2023년 12월 유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제가 당시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나중에 실제 수주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방산 입찰에서 기술 점수 앞에 이런 보안 리스크가 실제로 작동할지 반신반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23년 울산급 Batch-III 호위함 수주전에서 처음으로 그 답이 나왔습니다. HD현대중공업이 기술 점수에서 앞서고도 보안 감점(-1.8점)에 막혀 고배를 마신 것입니다. 이번 KDDX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되었습니다.
0.5867점 차이의 진짜 의미, 보안 리스크의 가격화
이번 평가 결과를 수치로 보면 상황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 기술 능력 평가: HD현대중공업 73.2383점 vs 한화오션 72.5958점 (HD현대중공업이 0.6425점 우위)
- 가점·감점 반영: 한화오션 +1.3584점 vs HD현대중공업 +0.1292점
- 최종 점수: 한화오션 93.9542점 vs HD현대중공업 93.3675점
즉 기술 경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이겼지만, 가감점 항목에서 격차가 1.2점 이상 벌어지면서 최종 순위가 뒤집혔습니다. 여기서 가감점 평가란 보안, 기술 이전 협력 이력, 사회적 가치 기여도 등 기술 외적인 요소를 점수화한 항목을 의미합니다. 보안 사고 유죄 판결이 이 항목에 직접 반영된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방산 산업에서 점점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과거에는 "기술 점수가 절대적"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거버넌스(Governance), 즉 기업의 윤리 경영과 리스크 관리 수준이 수주 결과에 직접 반영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거버넌스란 기업이 얼마나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운영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판단할 때 핵심 요소로 활용합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한화오션이 기술 점수에서 열위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KDDX 상세설계는 개념설계(한화오션)와 기본설계(HD현대중공업)를 모두 소화한 두 회사가 경합하는 구조였는데, 순수 기술 역량 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이 앞섰다는 점은 "실질적인 설계 경쟁력에서도 우위인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저는 이 점이 향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과정에서 한화오션이 반드시 증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출처: 방위사업청).
7.8조 원의 진짜 무게, 투자자 관점의 전망
이번 수주를 단순히 8,821억 원짜리 계약으로 보는 시각은 방산 산업 구조를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 제가 방산 프로젝트의 캐시플로우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직접 느낀 건, 선도함(Lead Ship) 수주는 그 자체가 계약이 아니라 시장 진입권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선도함이란 같은 급의 함정 가운데 첫 번째로 건조되는 기준함을 의미합니다. 설계 검증이 선도함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도함 건조사가 후속함(2번 함부터 6번 함까지)의 건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구조입니다. 업계에서도 이번 입찰을 따낸 업체가 후속함 건조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이번 8,821억 원 계약은 최대 7조 8,000억 원 시장의 문을 연 사건입니다.
방산 산업은 전형적인 장기 캐시플로우(Cash Flow) 산업이기도 합니다. 캐시플로우란 기업에 실제로 유입되는 현금 흐름을 의미하는데, 구축함은 건조 이후에도 유지보수, MRO(정비·수리·운용), 성능개량, 전투체계 업그레이드 수요가 20~3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이번 수주는 단기 매출 이벤트가 아니라 10년 이상 이어질 안정적인 수익 구조 확보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한화오션 입장에서는 한화그룹 방산 계열사(한화시스템의 MFR 다기능레이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함대공 미사일 등)와의 시너지까지 고려하면 중장기 성장 스토리가 분명히 강화된 상황입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이번 결과만 놓고 보면 패배했지만, 기술 경쟁력 자체는 오히려 수치로 입증된 셈입니다. 문제는 보안 리스크가 향후 울산급 후속 물량, 캐나다·폴란드 잠수함 수출 사업 등 다음 입찰에서도 계속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출처: 한화오션 공식 사이트).
핵심적으로 두 회사를 바라보는 투자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화오션: 수주 기대감이 반영된 구간을 지나 실행 능력 검증 구간으로 진입. 상세설계 및 건조 과정에서 기술 역량이 실제로 구현되는지가 관건.
- HD현대중공업: 기술 경쟁력은 입증됐으나 보안 리스크 관리 체계 개선 여부가 중장기 방산 수주의 핵심 변수. 사후 평가 신청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에 주목.
- 방산 산업 전반: 리스크 관리 능력이 수익성과 직결되는 구조로 전환. ESG 거버넌스 항목이 수주 결과를 좌우하는 선례가 확립됨.
0.5867점 차이로 7조 8,000억 원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번 결과가 단순한 수주 뉴스가 아니라, 앞으로 방산 산업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업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기술 스펙과 수주 규모 못지않게 각 기업의 보안 및 거버넌스 리스크 관리 체계를 함께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